아이 손에 묻은 물감이 하루를 설명해주던 날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3일 오후 03 25 04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손을 내밀었을 때, 알록달록한 물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씻기면 사라질 흔적이지만, 그날만큼은 괜히 바로 물로 보내기 싫었다.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옆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 어떤 색을 먼저 집었는지 같은 이야기가 그 손바닥에 전부 묻어 있는 것 같아서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대신, 나는 잠깐 그 손을 잡고 가만히 바라봤다.

육아를 하다 보면 거창한 사건보다 이런 사소한 장면들이 오래 남는다. 밤에 설거지를 하다 문득 떠오르거나, 사진첩을 정리하다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들. 예전에는 기록이라는 게 여행이나 특별한 날에만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사는 시간은 매일이 비슷한 듯 다르고, 아무것도 적어두지 않으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그게 조금 아쉬웠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 애가 자주 쓰는 말 기억나?” 둘 다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분명 매일 듣는데도 말이다. 그때부터 마음이 좀 급해졌다. 사진으로 남기기엔 부족하고, 메모처럼 적어두자니 정리가 안 되는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하루의 분위기나 감정, 가족 사이의 작은 변화들을 차분히 적어보기로 했다. 육아 팁이나 정답을 정리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 시기의 우리 가족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기록을 하다 보니 생활의 리듬도 달라졌다. 아이가 왜 그날따라 보채는지, 내가 유난히 피곤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쌓이기 전에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도움이 됐다. 완벽한 하루는 없지만, 돌아보면 의미 없는 날도 거의 없다.

이 공간에는 화려한 육아 성공담보다는 이런 일상의 결이 남게 될 것 같다.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부모의 마음도 같이 변해가는 과정, 가족이라는 단위가 어떻게 하루하루 조정되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오늘 아이 손에 묻어 있던 물감처럼, 언젠가 돌아봤을 때 그 시절의 색이 그대로 느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 박서윤 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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